스팟 메인 에피소드/서쪽 나라

스팟 메인 에피 1~6화 - 풍요의 거리(라스티카)

nil_mh 2020. 12. 13. 14:28

-1화-

현자 : 서쪽 탑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서쪽 마법사 여러분께 풍요의 거리 조사를 부탁드릴게요.

클로에 : 서쪽 나라의 수도, 풍요의 거리구나! 분명, 라스티카가 잘 알고 있었지.

라스티카 : 네. 잘 아는 가게도 많이 있습니다. 다음에 현자님을 안내해 드릴게요.

샤일록 : 풍요의 거리는 귀족 문화가 발달한 우아하고 세련된 도시입니다.
지금은 투박한 철강 건축물이나 공장도 늘고 있지만, 문화의 발신지인 점은 변함없습니다.

무르 : 연극도, 음악도, 복장도, 여론도, 유행은 풍요의 거리에서 생겨난다고들 해!

현자 : 활기찬 대도시군요.

라스티카 : 네. 현자님도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그런데 대체 어떤 이변이?

현자 : 그게... 풍작의 광장에 있는 여신상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고 해서요...

라스티카 : 그 아름다운 여신상에 대체 무슨 일이... 어서 확인하러 가요.

현자 : 네. 잘 부탁드립니다.

라스티카 : 맞다. 풍요의 거리에 가면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다과회'를 하면 좋습니다.
홍차와 간식을 즐기면서 평소보다 깊게 교류할 수 있어요.

현자 : 알겠습니다. '다과회' 말이죠. 다음에 왔을 때 시도해 볼게요.

라스티카 : 그럼 출발하죠.


현자 : 여기가 서쪽 나라 풍요의 거리.... 화려하고 멋진 거리네요.
앗...! 마차와 조각배가 하늘을 날고 있어....!

라스티카 : 요즘 귀족들 사이에서는 마법 과학의 힘을 이용해 특이한 것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이 유행입니다.
이 거리에는 전세계의 부와 쾌락이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하지만, 오늘은 뭔가.....

현자 : 뭔가.... 어떤가요?

라스티카 : 저주를 받은 것 같아요. 유감이지만, 이대로라면 이 수도는 멸망하고 말 겁니다.

현자 : 그런가요..... 네?! 멸망한다고요?!




-2화-

클로에 : 태, 태평한 말투로 심각한 얘기 하지 마! 농담이야? 진짜야...?

라스티카 : 클로에는 어느 쪽이 좋아?

클로에 : 내가 골라도 되는 거야?!

샤일록 : 확실히, 불온한 기색이군요... 장소의 질서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무르 : 봐! 저기 있는 여신상이 비틀림의 중심 같아! 가 보자!

현자 : 저게 여신상...? 폭삭 썩어빠져서 희미하게 눈을 뜨고 있어.... 왠지 무서운 분위기네요....

라스티카 : 이상하네요.... 이 여신상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조각이었는데.
게다가, 발밑을 보세요. 현자님도 무수한 손이 휘감고 있는 게 보이세요?

현자 : ........! 정말이다..... 검은 안개 같은 손이 잔뜩 겹쳐서 꿈틀거리고 있어....

라스티카 : '여신상의 발을 만지고 소원을 떠올리면 이루어진다'. 그녀에게는 그런 전설이 있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발끝을 만지고 소원을 빌고, 기도하고, 저주하고, 요청했어요.
겹겹이 쌓인 그 방대한 사념들이 <거대한 재액>의 영향으로 폭주해서 여신상을 눈뜨게 한 걸지도 모릅니다.

클로에 : 그럴 수가... 어째서.....?

샤일록 : 눈을 감는 모습이 기도의 상징이라면, 눈을 뜨는 모습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상징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신상 자체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축적된 방대한 사념이 소원이 이루어질 순간을 가슴 졸여 기다리고 있어요.
여신상의 눈이 완전히 뜨인다면 축적된 방대한 사념은....

무르 : 콰광-! 크게 터져서 거리로 튀어나올지도!

현자 : .....안 좋은 예감이 들어요....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을까요?

샤일록 : ....다시 한번 여신상의 눈을 완전히 감기게 할 수 있다면, 혹은.....

클로에 : 눈을 감게 하는 방법.... 눈을 감을 때가 언제지? 잘 때? 눈이 아플 때?

현자 : 앗.... 소리나 맛을 보다 깊게 느끼고 싶을 때는요?

라스티카 :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음악을 바치죠.




-3화-

라스티카 : 제가 여기서 연주를 해서 여신상이 눈을 감게 하겠습니다.
클로에 일행은 거리를 둘러싼 마법진을 그려서 여신상에 깃든 사념이 정화될 수 있도록 내 마법을 지원해 주겠니?

클로에 : 하지만 라스티카가 위험하지 않을지....

라스티카 : 괜찮아, 클로에. 이 거리를 같이 구해내자. 너와 가고 싶은 가게도 많으니까.

샤일록 : ....알겠습니다. 클로에, 가요. 라스티카, 부디 조심하세요.

라스티카 : 응.

무르 : 심각한 일이야! 여신상에 축적된 방대한 소원 모두가 이뤄질 순간을 기다리고 있어!
그런 건 물론 불가능해! 그러니 엉망진창인 힘이 뿜어져 나올 거야!

라스티카 : 그건 곤란하네.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면서 라스티카는 변함없이 미소지었다.
클로에가 걱정스러워하는 것을 깨닫고 나는 라스티카 옆에 섰다.

현자 : 괜찮아요, 클로에. 저도 라스티카와 함께 여기 남을게요.

라스티카 : 현자님....

현자 : 무슨 일이 있을 때 현자가 가진 신비한 힘이라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감청색의 하늘색 눈동자가 내 각오를 확인하듯 가만히 바라본 뒤 웃었다.

라스티카 : 믿음직스럽군요. 그럼 같이 여신상이 눈뜨는 것을 저지해요, 현자님.

각오를 굳히고 나는 끄덕였다.


클로에 일행이 사라지자 라스티카가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라스티카 : <아모레스트・비엣세>

그러자 잠시 후 어디선가 쳄발로가 하늘을 날아왔다.
흔들흔들 허공을 날아 쿵 하고 착지했다. 이상한 쳄발로에 행인들이 흠칫했다.

신사 : 쳄발로가 하늘을....?! 마법 과학 장치 짓인가...? 어딘가에 마법사가 있는 건가?!

그들에겐 여신상의 발밑에 감긴 손도, 뜨일 듯한 눈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현자 : (어째서 나한테만 보이는 걸까. 이것도 현자의 힘일까....)

내 의문이 풀리기 전에 라스티카가 쳄발로 앞 의자에 걸터앉았다.




-4화-

그러자 몇몇 사람이 따지기 시작했다. 

신사 : 자네, 훔친 거 아니야? 마법사가 이런 데서 뭘 하려는 거야?!

신사 : 아하하! 이거 재밌겠군! 잘 치면 은화를 주지!

귀부인 : 어머, 멋진 사람... 몸가짐이 세련됐어. 어딘가의 귀공자가 아닐까?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관중이 라스티카의 연주를 방해하지 않도록, 나는 두 팔을 벌려 그를 지켰다.

현자 : 여러분! 밀지 마세요! 중요한 연주예요. 이 거리를 위한 거예요.

신사 : 세금으로 마법사를 고용한 건가? 정말이지 요즘 정치인들은....

라스티카 : 현자님.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라스티카가 쳄발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쳄발로는 실내악기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는 소리가 끝없이 퍼져서 불안하게, 힘없이 희미해져 버린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연주하는 음악은 마법의 주문처럼 소리높게, 신비롭게 울려퍼졌다.

신사 : 오오, 아름다워.....

쳄발로의 음색이 울릴 때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거리의 건물이나 연주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쇠처럼 질척하게 녹아내렸던 것이다.

신사 : 오오, 아름다워..... 오오오....

귀부인 : 후후, 멋져... 아아아.....

현자 : ..........?!

어느샌가 하늘은 밤처럼 어두웠다. 어두운 거리의 하늘에서는 별똥별처럼 무수한 소리가 난무했다.

??? : '제발 병이 낫기를.'

??? : '제발 그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 : '제발....'

여신상의 발밑에서 무수한 손이 허우적댔다. 거리를 날아다니는 수만 개의 소리는 어느새 짐승의 포효처럼 변했다.

??? : '오오오.....'

??? : '오오오오오.....'

거리가 포효를 지르며 시커멓게 흐물흐물 녹아 갔다. 큰 파도가 되어 출렁출렁 흔들렸다.
공포로 심장 소리가 빨라졌다. 하지만.....
쳄발로를 연주하는 라스티카의 우아한 옆모습을 보니 왠지 안심할 수 있었다.

라스티카 : 괜찮습니다, 현자님.
제가 당신을 지킬 겁니다. 소중한 새장 안에 가둬서 이 품에 안을 수 있도록.
절대로 놓지 않을 겁니다.



-5화-

귀에 부드럽게 와 닿는 목소리와 아름다운 선율....
여신상의 눈동자도 편안한 듯 천천히, 조금씩 감겨졌다.

현자 : (이대로 저 눈이 감기면....)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하늘을 날아다니는 무수한 목소리 중 하나가 라스티카의 이름을 불렀다.

??? : '라스티카 님!'

라스티카 : ........

??? : '제발, 여신님. 달리 바라는 건 없습니다. 제발 라스티카 님을!'
'라스티카 님을!'

그 목소리는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하고, 아이 같기도 하고, 노인 같기도 했다.
강하게 호소하는 목소리에 호응하여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여신상의 눈동자가 뜨였다.
라스티카도 망연히 눈을 뜨고 있었다. 긴 손가락은 연주를 멈추고 있었다.

라스티카 : .....너는.....?
너는 누구?

여신상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제 새까만 물결로 변한 거리에 셀 수 없이 많은 눈이 있었다.
음악이 사라진 거리에서 수억 개의 소리가 노래하고, 수만 개의 눈이 크게 뜨였다.

현자 : (잘못된 것 같아....!)

나는 순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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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1 : 라스티카의 등에 매달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라스티카의 등에 매달렸다.

현자 : 라스티카....!

라스티카 : ........!

공포가 배어 있는 내 비명에 라스티카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았다.
보기 드물게 시선을 날카롭게 하며 억지로 나를 끌어안았다. 의외로 강한 힘에 놀랄 여유는 없었다.

라스티카 : 안 돼. 멍하니 있었어. 또 클로에에게 혼날 거야.


>선택 2 : 라스티카의 어깨를 흔들었다.

나는 라스티카의 어깨를 흔들었다. 멍한 듯 눈을 뜨는 그의 의식을 끌려고 필사적으로 말을 걸었다.

현자 : 라스티카, 정신 차려요! 라스티카....

라스티카 : .....줘......

사라질 듯 작은 목소리로 라스티카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어둠보다 무서운 느낌이 있었다.

라스티카 : .....용서해 줘.....

현자 : 네....?

다음 순간 라스티카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감싸듯이 나를 옆에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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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라스티카 : 현자님, 무사하세요?

현자 : 네, 네.....

라스티카 : 다행입니다. 이제 원래 세계로 모셔다 드릴게요. 눈을 감고 계세요.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어둠 속의 무수한 눈알이 섬뜩한 모습으로 들이닥쳤다.
무서워서 눈을 꼭 감았다. 라스티카의 손이 안심시키듯 내 등을 쓰다듬었다.

라스티카 : 괜찮습니다, 안심하시길. <아모레스트・비엣세>!

그가 마도구인 새장을 들어올렸다. 눈을 감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수한 날개 소리가 울리고 라스티카의 새장으로 빨려들어갔다.
이 세계의 어둠을 모두 빨아들이는 것처럼.

라스티카 : 안녕히. 보답받지 못한 소원들이여.
슬픔도, 괴로움도 이리로 오렴. 언젠가 너희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게.
내가 기억한다면 말이지만.

라스티카의 미소를 들으며 나의 의식은 점차 멀어져 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 거리는 원래대로 변해 있었다.
여신상도 부드럽게 눈꺼풀을 감고 미소짓는 여성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현자 : 다 해결된 건가요? 저는....

클로에 : 현자님! 깨어나서 다행이다.... 계속 정신을 잃고 있었어.

샤일록 : 장소의 질서가 흐트러지고 오염된 기색이 있어서 황급히 여기로 돌아왔습니다.

무르 : 하지만 전부 해결된 뒤였던 것 같아! 현자님도 라스티카도 대단하네!

클로에 : 정말 두 사람이 무사해서 다행이야.... 하지만 힘들었지? 어떻게 해결한 거야?

클로에의 질문에 나는 라스티카를 돌아봤다.
으스스한 어둠의 거리. 무수한 목소리와 눈동자. 라스티카를 부르는 강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라스티카 님을!'

현자 : (라스티카 님을.... 뭐라고 말하려던 목소리였을까?)

라스티카는 나와 눈을 맞추며 빙긋 미소지었다.

라스티카 : 열중하느라 잊어버렸어. 분명 현자님 덕분에 해결됐을 거야.
현자님. 사랑하는 친구들. 임무도 무사히 끝났으니 다음 예정은 이렇게 하지 않으시겠어요?
맛있는 차를 마시고 멋진 시간을 보내고, 느긋하게 마법관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아까 본 날카로운 표정이 거짓말인 것처럼, 라스티카는 응석부리는 미소를 지었다.
그건 수백 년의 역사가 있는 여신상이라도 무심코 소원을 들어 주고 싶게 만들 매력적인 어리광이었다.

라스티카 : 어떠세요? 현자님.